handmade IN jEONJU
손의도시 전주
옻칠의 즐거움을 깨닫다
어릴 때 제 놀이터는 아버지(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13호 이의식 옻칠장)의 공방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아버지가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고, 자연스럽게 공예 기법을 체화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옻칠을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 였는데요. 마감 작업으로 바쁘셨던 아버지가 도움을 요청 하시면서였어요. 옻칠에 재미를 느꼈지만 전혀 다른 전공을 선택해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때는 아버지의 일을 물려 받게 될 거란 생각을 못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옻칠을 할 때 그 어떤 일을 할 때보다 즐거웠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이후 아버지의 대를 이어 옻칠을 해보자고 다짐하고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옻칠은 끈기를 가지고 배우고 반복해야 하는 일입니다. 단기간에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인내심도 필요하고요. 그런데 사실 저는 무언가에 재미를 느끼면 빠르게 익히는 반면 아쉽게도 흥미를 잃는 속도도 빨랐습니다. 그랬던 제가 이 일을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옻칠은 재료와 기법 등 익혀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해 항상 새롭게 도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옻칠을 배우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전수장학생으로 아버지께 칠을 배우던 중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전통회화의 이론과 기법, 공예이론, 수리 보존(복원)까지 많은 것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를 마치고 더 넓고 깊게 공부하고 싶어져 교토조형예술대학교에 진학해 문화재 보존과 분석을 공부하며 석박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10년가량의 시간 동안 한국에서는 미처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칠기를 보고 기술을 익혔고요.어느 날은 교토 시내를 지나는데 우연히 지도 교수님을 만났어요. 골동품을 보러 가신다는 말에 선뜻 따라갔는데 쉬이 보기 힘든 다양한 골동품을 소유한 곳이었습니다. 이토록 오래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골동품들을 보다 보니, 당시 조금씩 하고 있던 보존 처리 일의 중요함을 새롭게 깨달았고 제대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옻칠 작업
칠기 기법 중 특히 전통적인 기법과 재료에 관한 연구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데요. 고려 시대의 대모·금속선·평탈과 조선 시대의 어피 등의 재료로 칠기를 제작하며 당시의 기법을 부활시키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전통을 전승하는 것을 가장 염두에 두지만 새로운 문양을 넣어 제 작품만의 정체성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대를 표현해 후대로 남기는 것도 제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이니까요.
가장 아끼는 작품
국가무형유산원 전승공예품은행에 소장되어 있는 [운용문대모머릿장]입니다. 검은 바탕에 용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문양을 대모(玳瑁)로 작업한 작품인데요. 용의 머리와 비늘 하나하나의 무늬와 색을 고심해서 만들었고, 대모 기법에 대한 시행착오를 수 차례 겪으며 완성한 작품이라 더욱 애정이 갑니다.
전통의 보존, 미래로 전승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음을 뜻하는 ‘검이불루 화이불치’(俭而不陋 华而不侈)는 한국 공예를 이야기할 때 늘 회자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말로, 옻칠에도 딱 맞는 말입니다. 저 역시 어느 곳에 있어도 튀지 않고 어울리면서도 독특한 기품을 내뿜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작품의 완성도를 신뢰할 수 있는 공예작가로 남고 싶고요. 또 하나 아버지의 전승자로서는 옻칠의 전통적인 기술을 고스란히 보존해 미래로 잇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