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dmade IN jEONJU
손의도시 전주
한지 공예의 시작
남편의 직장 때문에 전주로 오게 되었어요. 취미 삼아 서예와 사군자를 하고 있었는데, 여성회관에 가면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말에 찾아갔어요. 아쉽게도 이미 서예는 만석이었습니다. 그냥 돌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이왕 왔으니 무엇이든 배워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저런 수업 중 한지공예를 선택했어요. 수업을 듣다 보니 제가 이미 생활 속에서 한지 공예를 직접 만들어 활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결혼 초 아이들이 어렸을 때, 집에 작은 다락이 있었거든요. 거기에 가족들의 옷을 보관해야 하는데 그땐 뭐든 흔치 않은 시절이라 서랍장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제가 나무로 된 사과 상자를 깔끔하게 닦고 겉면에 종이를 여러 겹으로 붙여서 거기에 짐을 보관하곤 했습니다.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한지 공예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삶 가까이에 언제나 있었겠구나 싶었습니다.
나의 작업
한지 공예를 할 때는 다소 예민하고 꼼꼼해지는 편입니다. 1mm의 오차도 없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지를 붙일 때 사용하는 풀도 여전히 매일 끓여서 씁니다. 당일에 모두 사용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고집스레 지키는 원칙입니다. 거름망에 걸러 끓이면 풀의 입자가 정말 고와요. 이 풀로 작품을 만들면 방부제가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색을 유지합니다. 부산대 APEC e-Learning에서 6년을 강의를 했는데요. 그때도 늘 풀을 미리 끓여서 전주와 부산을 오갔습니다. 한지 공예는 색지, 지호, 지승 등으로 세분화하는데요. 저는 한지 공예 전반을 다루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색지 공예는 김혜미자 선생님, 지승 공예는 최영준 선생님, 지호 공예는 김한수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익혔습니다. 어떤 분야의 작품을 만들더라도 한 번에 완성까지 도달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요. 일부를 만들어 놓고 관찰하면서 조금씩 더하고 빼는 과정을 거쳐 최종 단계에 이르게 되는 거죠. 사실 저는 한지가 아니라 다른 공예도 부지런히 배우러 다녔어요. 천연 염색, 짚풀 공예, 목공, 민화, 매듭, 옻칠 등 어찌 보면 한지 공예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은 것들도 있지만 이 일을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예를 들자면 목공에 도전한 건 제도를 배우고 싶어서였어요. 한지 공예에서도 밑그림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미세하게 오차가 생기더라고요. 이 점을 보완할 방법을 찾다가 목공에서 답을 찾은 거죠. 저의 공예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대와 발맞추는 작품
사군자와 한글 등을 문양으로 장식한 3단 책장을 만들어 1998년 제3회 온고을전통공예전국공모전(현>전주전통공예전국대전)에서 대상을 받았어요. 또 이 무렵 제2회 대한민국관광기념품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한국관광명품 27호로 선정되는 등 좋은 일이 연거푸 생겼습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제 한지 공예 역사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후 작업실도 열고 본격적으로 작품을 만들며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으니까요. 우연한 기회에 아리랑TV에 납품을 하면서 작품을 대량의 상품으로 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한지 접시, 한지 등(燈), 한지사 손수건 등 다양한 작품을 개발해 전라북도,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기관에 납품하기도 했습니다. 한지 공예가 과거에 머무르기보다는 시대정신에 발맞추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전통기법에 대한 존중은 당연히 작업 과정에서 실현되어야 하지만 거기에 현대의 아름다움을 더한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또 제가 살고 있는 전주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전주 한지 공예를 더 활성화시키고픈 꿈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