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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도시 전주
미학이 철학으로부터 분리되어 단독적 학문으로 독립하게 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였다. 1750년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A.G.Baumgarten, 1714-1762)이 미학적 담론을 감성적 논리로 새롭게 체계화한 『sthetik』(영문명 aestetics, 미학·감성학·감성적 인식·감성적 인식학 등)으로부터 출발한다. 미학은 비교적 뒤늦게 출발한 독립적 분과학인데다, 우리들의 실생활에 절실한 학문이 아니라서 낯선 신생의 학문처럼 느껴진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서예미학書藝美學 역시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우리에겐 무척 낯선 신생의 학문이다. 3천여 년 전 갑골문甲骨文을 비롯한 여러 서체의 한자漢字가 출현한 후 여러 뛰어난 학자들과 서예가들, 예를 들면 주역周易의 여러 저자들과 진대秦代의 이사李斯, 한대漢代의 양웅揚雄·허신許愼·채옹蔡邕, 위진남북조대魏晉南北朝代의 왕희지王羲之·왕승건王僧虔, 당대唐代의 우세남虞世南·손과정孫過庭·이양빙李陽氷·안진경?眞卿 등의 서예미학사상에 관한 기록들이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는 데서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서예미학은 그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의미의 연구는 20세기 중반 중국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1970년대 말 서예열書藝熱과 미학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되었기에 낯선 신생의 학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의 경우 서예미학의 학술적 연구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양적 질적으로 큰 차이를 이루며, 연구할 수 있는 인적 자원도 크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심하게 말하면 서예문화의 학술적 연구에 관한 한 황무지 개척기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그나마도 ’88세계올림픽 대회의 개최를 계기로 세계를 향한 문호 개방과 함께, 원광대·계명대·대구예술대·대전대 등에 서예학과가 개설되어 크게 기대하기도 하였으나, 서예의 학술적 연구와는 거리가 먼 현대식 서예학원에 머물고 말았으며, 그나마도 지금은 폐과되어버린 실정에 놓여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1998년 한국서예학회가 창립되고, 1999년 한국동양예술학회가 창립되며, 2007년 한국서예비평학회가 창립됨으로써 비로소 서예의 학술적 연구 분위기가 진작되기 시작하였다. 여기 더하여 2000년 21세기의 도래와 함께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 서예미학 전공 석사과정이 개설되고,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유학과에 동양미학 전공 박사과정이 개설되므로써 바야흐로 서예의 학술적 연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서예 관련 여러 학회의 창립과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의 서예미학 전공 석사과정 개설 및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유학과의 동양미학 전공 박사과정 개설은 나의 서예미학 연구와 결코 무관치 않다. 본시 나의 대학 강단활동은 중국철학, 특히 공맹유학과 노장학, 그리고 공맹유학의 창조적 계승·전개인 양명학의 연구와 강의 활동이었으며, 서예미학과는 전혀 관계 없이 이루어졌다. 이후 서예 관련 학회를 창립하고, 대학원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에 서예미학과 동양미학 전공 과정을 개설하면서 나의 학문적 관심은 서예미학으로 급속히 경도되어 갔다. 태어나면서부터 묵향 속에서 자라고, 일상적인 서예 체험과 서예 창작의 과정으로 다져진 나의 생활이 학회에서의 발표와 석·박사과정 학생들을 교육하고 지도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하나로 맞물리면서 나의 서예미학(동양미학)에 대한 관심은 빠르고 자연스럽게 열려 갔다.
나의 학문적 연구와 독서 및 강의 활동을 통한 자각적 자득自得은 한국의 전통철학과 중국철학, 특히 공맹유학孔孟儒學과 노장학老莊學, 그 중에서도 공맹유학의 창신적 계승인 양명학陽明學이 모두 심학心學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양명심학은 모든 존재와 가치의 본체를 인간 개개인의 선천적 본래마음, 즉 양지良知에 두고, 그 자연스러운 발현과 전개를 삶과 학문의 주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 어떤 미학사상도 양명심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서예비평과 신서예정신 및 서예미학사상 등에 관한 글들을 틈틈이 써온 바 있다. 이제 나이 팔순八旬을 넘어 이책 저책들에 산재해 있는 서예미학사상에 관한 글들을 다시금 가려 뽑아 약간의 수정을 거친 후, 한 권의 책으로 엮고, 『서예미학사상 산고書藝美學思想 散稿』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이는 나의 학문적 업적을 세상에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서예미학사상에 관심을 기울이며 삶을 살아간 한 독서인讀書人으로서, 그 자취를 한 곳에 모으는 작업 자체가 무척 즐겁기 때문이다. 여기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2022년 푸른 5월에
송하경 적다
2022.06.21
[서문]
전통 자수를 접할수록, 복식뿐만 아니라 장신구류, 생활용품류, 침구류, 장식류, 종교용품류에 수(繡)가 얼마나 폭넓게 선인들의 삶을 빛나게 했는지 조금씩 느껴졌다.
한 올 한 올의 실로 자수한 문양마다 개별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각각의 문양들이 서로 어우러져 전체적 의미가 새롭게 부여되기도 하고 더욱 강조가 되기도 하는, 집합적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았다. 마치 우리 민족성과 같은 동질의 예술세계를 바탕천 위에 수놓아 펼쳐 놓은 것이다.
자수는 사용자가 무엇을 표현하고, 바라고, 전하고 싶은지를 대변하는 무언의 메시지(message) 전달 역할을 한다.
예로써, 왕은 자신의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하는 문양을 선택하고 귀한 금사 또는 은사로 아주 세밀하고 정교하게 자수한 보(補)를 가슴과 등 그리고 양어깨에 부착하였다. 이러한 표상적(表象的) 의미는 왕비를 비롯한 왕가와 관료에게도 해당된다.
자수된 문양 속에는 소망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함께 수놓아져 있기에 3자(수 놓는 자, 사용자, 보는 자)의 스토리텔링이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공유하고 소통하기 충분하다.
자수는 예술적 아름다움이 있다. 문양에 따라 자수 기법을 달리하면서 색감적 조화를 이루고 볼륨을 주어 입체적 효과를 준다. 평면 위에 공간을 느끼게 하는 예술성이다.
자수는 희망과 꿈 그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긍정적인 영역을 확장하는 데 일조(一助)한다. 자수는 곧 인문학적 예술인 것이다.
이러한 전통 자수의 맥을 잇는 분들의 위대한 선택을 존경하며 그 분들의 역할에 감사드린다.
필자는 전통 자수에 대해 전문 지식이나 기능은 갖추지 못했지만, 전통 자수가 엄청난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시대를 망라(網羅)하고 복식을 빛내는 전통 자수에 이끌려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깊지 못한 탐구와 짧은 소견에 불과하지만 부족함을 뒤로하고 전통 자수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 서문 중에서(이봉이)
2022.03.18
우리 공예 전통기술과 폭넓은 정보를 담은 책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김태훈)에서는 우리 공예의 전통기술과 폭넓은 정보를 소개하기 위해 ‘우리공예·디자인리소스북’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지난 2011년 〈한눈에 보는 나전칠기〉를 시작으로 천연염색, 소목, 장석, 한지, 백자, 누비, 옹기, 침선, 매듭, 입사, 청자, 옻칠, 소반, 제와, 금박, 화혜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리소스북 시리즈물을 17권 발간했다. 이어서 이번에는 18번째인 〈한눈에 보는 칠보〉 를 발간했다.
2022.02.28
일본 학계의 한국 도자 연구 자료 수록
이 책의 제3부 자료편은 일본 학계에서 이루어지는 한국 도자 연구 성과를 수록하고 있다. 기본 자료인 ‘고려 도자·조선 도자 용어 해설’과 고려 도자와 분청·백자의 ‘요지 분포도’를 비롯해, 일본 학계의 한국 도자를 연구한 문헌이 ‘한국도자사 일본어 문헌 목록(189~2016년)’에 총론, 논문, 단행본 등으로 구분되어 잘 정리되어 있다. 또한 한국 도자와 중국 도자에 관한 ‘주요 저작 목록’도 수록되어 있다. 이 저작 목록은 단행본(저서單著, 공저, 편저, 감수를 포함) 및 도록, 잡지, 심포지엄(보고서가 있는 것에 한함)을 발표 순서대로, ‘한국 도자’와 ‘중국 도자?일반’으로 분류하여 수록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관련 자료 도판을 풍부하게 수록하고, 연구 자료의 출처를 세세하게 밝히고 있다. 한국 도자는 물론이고 동양 도자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기본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연구의 길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2.02.10
(……) 유년기인 5, 6세 때 입춘서를 쓸 정도였다는 것은 앞서 언급했거니와 이 당시 가학으로 구성궁예천명을 배운 것으로 시작하여 대구사범학교 재학 때 우당 김용하(愚堂 金容河)의 훈도로 서예가의 자질을 키워 나갔다. 이때 왕희지의 〈집자성교서〉, 〈난정서〉, 〈십칠첩〉과 구양순의 〈예천명〉, 우세남의 〈공자묘당비〉를 비롯하여 〈조전비〉, 〈예기비〉, 〈장천비〉 등 한비(漢碑)에까지 접하였으며, 이후 서울 미대 시절에는 소전에게 서예가의 풍모와 자세, 폭넓은 안목과 걸출한 감각 등에 대하여 큰 영향을 받은 것이 매우 중요한 기조가 되었다. 다만 소전의 애제자이면서도 국전 출품작품은 내 글씨를 쓴다는 정신으로 고전을 천착하며 독자의 길을 추구하는 남다름이 있었다. 이때 심취한 글씨는 갑골(甲骨)과 석고문(石鼓文)이었는데, 석고문은 일생에 가장 애호하는 것이 되었다. 졸업 이후에는 조상(造像)·마애(摩崖)·묘지(墓誌)·목간(木簡) 등을 비롯, 석문명(石門銘)·장맹룡(張猛龍) 등 북위(北魏)의 글씨를 연구하였고 나아가 당·송·원·명·청 제명가(諸名家)의 법첩을 섭렵하면서 다시 진·한의 체세(體勢)와 위·진의 풍운(風韻)을 누수(累修)하여 마침내 동강의 특장이라 할 수 있는 행초에 침잠하였다. 왕희지를 존경해마지 않으며 손과정의 서보(書譜)와 석도(石濤)의 〈화론(畵論)〉을 유독 선호하면서 지금도 변신을 위하여 ‘무엇을 쓸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쓸 것인가’를 화두로 삼아 가치추구의 진실을 체험하기 위하여 고뇌한다. 동강의 학서관(學書觀)은 초월절진(超越絶塵)의 기품과 일탈(逸脫)의 기상에 두고 있으며, 학문적으로 접근하면서도 ‘자연위사(自然爲師)’·’조화위사(造化爲師)’를 종법으로 삼고 있고, 늘 서론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는 예리한 분석력과 높은 안목을 추구한다. 또한 서예관은 군자의 풍도가 있는 유덕한 글씨, 독자적인 자기만의 글씨를 쓴다는 것과 차원 높은 지적 세계에서 도출되는 다채로운 가치관을 견지하며 대자연의 생명력을 구가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학서의 자세는 서법의 원류는 간파하되 고금명가의 중법(衆法)·법박(法縛)을 지양하는 정신을 가지고 넓은 가슴과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그의 서법 연원과 학서관, 서예관, 학서 자세 등이 어우러져 예술조예가 신장되면서 행초에 있어 독특함과 기품을 겸비한 승고신화(承古新花)의 동강체를 이루니 이는 조박(糟粕)을 물리치고 진수를 체회(體會)하려는 고행의 결과인 것이며, 그 이면에 면면히 이어져온 시·서·화에 대한 박섭(博涉)·박람(博覽), 국제적 거장과의 교류, 인간과 예술에 대한 역사의식의 정립, 반골의 냉엄한 자아실현, 과묵 솔진한 성격 등의 뭉뚱그러짐 그 자체인 것이다. 대만의 국립역사박물관 관장인 하호천(何浩天)은 〈동강 조수호 서화집〉 서문에서 “대한민국 조수호 선생은 그 의경(意境)을 엿보고 그 신운을 승습(承襲)하면서 자가(自家)의 풍격을 창작하였던 바, 그 행초와 해서는 기세가 방박(磅儁)하고 심후주경(深厚壬勁)하며, 전서는 균칭정발(均稱挺拔)하고 난죽의 조예는 다시 탈속됨을 볼 수 있으니 깊고 두터운 학문과 소양이 있지 아니하고서야 어찌 능히 여기에 이르렀겠는가!”라 하였고, 또 요몽곡은 대만 국가화랑서화전에 부쳐 쓴 ‘동강거사 서여기인(書如其人)’이란 글에서 “그 사람됨을 보면 문질빈빈(文質彬彬)하고, 그 글씨를 보면 고아(古雅)하며 생운(生韻)하다. 결구의 호응과 선획의 유미(流美), 그리고 용묵의 윤택은 이미 송명(宋明)의 서림(書林)에 직탐(直探)하였다”라고 술회한 것 등에서 동강의 세계를 가히 엿볼 수 있다. 동강은 붓 잡은 지 70년이 지난 이제서야 글씨가 무엇인지 좀 알 것 같은 안목이 생긴 것 같다고 술회한 바 있다. 진정한 승고신화는 이제부터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나 할까! - ‘이 시대의 一大雅士 東江’, 선주선(원광대교수)
2022.01.26
쇠로 만든 신발이 다 닳도록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더니, 전혀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었다[踏破鐵鞋無覓處, 得來全不費功夫].
1만 3천여 자의 한자 표제자에 대해, 한(漢)·위(魏)·진(晉)·당(唐)·송(宋)·금(金)·원(元)·명(明)·청(淸) 및 현대의 초서 명필 서법가 330여 명이 쓴 초서 범자(範字)를 수집하여 수록하였다.
이 책에 수록된 초서들을 쓴 역대 대표적인 서법가들로는, 한(漢) 장지(張芝), 오(吳) 황상(皇象), 진(晉) 사마의(司馬懿)·황희지·왕헌지·색정(索靖)·왕도(王導), 당(唐) 태종 이세민(李世民)·회소(懷素)·손과정(孫過庭)·하지장(賀知章)·안진경(?眞卿)·구양순(歐陽詢)·우세남(虞世南)·장욱(張旭), 송(宋) 고종 조구(趙構)·소식(蘇軾)·미불(米?)·채양(蔡襄)·육유(陸游), 금(金) 장천석(張天錫), 원(元) 조맹부(趙孟?)·등문원(鄧文原)·선우추(鮮于樞), 명(明) 축윤명(祝允明)·문징명(文徵明)·동기창(董其昌)·송극(宋克)·왕탁(王鐸)·한도형(韓道亨)·왕총(王寵), 청(淸) 왕세당(王世?) 등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다.
1만 3천여 자의 한자는 흔히 사용되는 글자는 물론이고, 과거 초서 문헌에 사용된 거의 모든 글자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한자를 공부하거나, 서법을 연구하거나, 초서 고문헌을 독해하는 데 자전의 역할을 할 수 있다.
2022.01.10
海東歷代 名家筆譜
1926년 백두용이 우리나라 역대 명가의 필적을 모아 엮은 서첩.
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역대 서예가 인명의 나열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으며, 더욱이 수적을 빠짐없이 실음은 우리 글씨의 변천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서예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목판본. 자발(自跋)에 기년(記年)조차 써넣지 않았고, 서문에는 누가 쓴 것인지 기명(記名)도 없다.자발에 보면 돌아가신 아버님의 뜻을 이어 수십년 동안 우리 역사 4,000년간의 고금명가의 필적 700점을 모아 6권으로 편집하여 ‘해동명가필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또, 고인이 글씨를 쓰는 데는 죽필·가죽필과 털붓을 다 이용하였는데, 이것들은 통틀어 붓〔筆〕이며, 그 붓이 무슨 족보가 되겠는가마는, 용필의 공부는 사람에 있고 그 필필(筆筆)이 곧 그 사람이기에 필보라 하였음을 밝혔다.또한, 편집의 일은 큰일이나 미력하여 혹 주옥같은 것이 빠졌을지도 모르며, 완벽은 후일을 기대한다고 적고, 모든 군자들의 용서를 바란다고 하였다. 책의 구성은 서문을 넣고 매권마다 인명의 약전을 앞에 적은 뒤 수적(手蹟)을 나열하였고, 말미에 전각도 넣었으며 마지막으로 편집자의 말을 실었다.책의 표지는 오세창(吳世昌)이 썼다. 성균관에서 영인한 책은 상하 각각 3권으로 나누어 인쇄하였다.
2022.01.10
삶의 질이 높아지고 다양한 개성이 표출되면서 귀금속 산업은 더욱 활성화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며, 이에 따라 일정한 수준을 갖춘 전문기술의 수요 역시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에서는 귀금속공예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물론 산업현장에서 실무에 종사하는 실무자들도 자신의 기술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국가기술자격 취득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자격검정을 위한 귀금속 분야의 수험서는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기에 좀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험서를 통해 수험생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국가기술자격제도에 맞는 체계적인 기본원리를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먼저 귀금속가공기능사, 산업기사, 기능장의 검정대비를 위한 시험과목인 귀금속재료, 귀금속가공, 보석일반, 공예사, 공예디자인, 제도, 색채학 분야의 이론 요점정리와 시험출제 경향의 분석을 토대로 한 연습문제 부분이 있습니다.
수험생 여러분들께서는 우선 기본서를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폭넓게 공부한 후에 숙지한 내용의 확인과 실력향상을 위해 문제를 풀어봄으로써 가변적인 출제경향에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2022.01.10